잡기장입니다.


 글보기 :: 60억개의 우주 사이에서
| View : 1,676 | Date : 11.6.10-am.01:26
제목 없음
 
서대문 부근에 일이 있어 사진을 찍은 후에노트북으로 찍은 사진도 확인하고, 더위도 식힐 겸 별다방에 들렀다. 나는 그 곳에서 '맥도날드 할머니(또는 스타벅스 할머니로 불리는데 젊은 시절 외무부에서 근무하셨지만, 지금은 24시간 맥도날드와 스타벅스를 돌며 노숙 생활을 하시는 걸로 알려져 있다)'를 뵙게 되어 할머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할머님은 크리스챤으로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현재가 불행하지는 않다신다. 또한 반값 등록금 문제나 취업난, 남북한의 관계, 미국과 중국으로 양분화 되어 있는 세계정세를 과거 사대주의까지 거론하며 해석하셨는데 그걸 보며 얼마나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생각하시는지를 깨닫고 새삼 놀랐다. 테이블 위에는 할머니께서 매일 구입하여 보신다는 문화일보가 검정색 플러스펜으로 기사마다 가득하게 밑줄이 그어진 채 펼쳐져 있었다.
할머님은 더불어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너무 컴퓨터에만 매달려 있는 것 같아요. 젊은 사람들은 나가서 뛰어 놀아야 해요.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니까요!"
미디어에서 접한 할머님의 내력(?)을 모르지 않는 바 간단하게 사는 이야기만 하려 했는데, 할머님과의 대화의 범주는 내 상상을 넘어서고 있었다.
"삶의 목적은 성취에 있어요." 할머니는 말씀하시더니 잠깐 동안 곰곰이 생각에 잠기셨다.
삶과 성취. 간단하지만 어려운 이야기들이다.
"제가 젊었을 때 눈이 너무 높았어요. 그래서 아무도 못 만났어요. 한 때는 그것이 무척 힘들었는데, 이렇게 살아 오니 이제 삶이 뭔지를 조금 알겠어요."
할머님의 성취가 삶에 대한 깨달음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었을까.
 
할머님은 커피를 두어모금 홀짝 거리신 후에 말을 이어 나가셨다.
"우리나라 사람은 미소가 너무 없어요. 여기 창가에 앉아 지나 가는 사람들을 종일 보고 있으면 웃는 사람이 없어요. 모르는 사람들에게 웃으며 인사도 하고, 스치면 죄송하다고 또 웃고, 매일매일 웃으며 살아 봐요. 지역감정이고 통일이고 금방 다 해결될테니."
역시 간단하지만 어려운 이야기들이었다.
"어쩌면 할머니 살아 계실 때 통일이 될까요?"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실지도 모르죠. 하나님은 이 세상 사람들의 머리카락 갯수까지도 다 알고 계시다니까요!" 라고 말씀하시며 웃으신다.  
 
할머님께서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거듭 말씀하셨다. 세상이 21세기에 들어선 것처럼, 인간도 21세의 성인식을 맞는 것처럼 마음 다잡고 행복하게 살아가자고. 왜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처럼 전쟁이나 서로 헐뜯고 짧은 일생을 사느냐고 성토하신다.
 
"할머니 제가 직업이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 할머님 얼굴을 간단하게 그려도 괜찮을까요?"
"에고, 사진은 싫어요. 전에도 TV에 나갔는데, 사람들이 많이 알아 보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마음을 다르게 먹으려 하는데도 별로 얼굴은 나가고 싶지 않아요."
"그냥 그림인데요?"
결국 극구 거절로 할머님의 얼굴은 담을 수 없었다.
 
"제가 할머님 시간을 방해한 건 아닌가요?"
"아니에요. 제가 선생님 시간을 방해한 것 같네요."
"평소에도 이렇게 대화를 많이 하시나요?"
"아니에요. 그런데 선생님이 말을 많이 하게끔 만들었네요~"
사실 질문한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어쩌면 할머님께서는 이미 마음 속에 쏟아 내고픈 많은 이야깃거리를 잔뜩 담아 놓고 계셨는지도 모른겠다. 단지 내가 그 끄트머리를 건드렸을 뿐..
1시간 30여분의 짧지 않은 대화가 끝나고 할머님의 뒷 자리에 앉았다.
이제 여기 들어온 목적이었던 사진 정리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뒷모습과 손 하나뿐이지만
어쨌든
나의 풍경
그리고, 그녀의 풍경을 담아 본다.
 
 
올해 초 할머니의 이야기가 TV전파를 타고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면서많은 찬반 의견들이 엇갈렸던걸로 안다.
지금..지구에는 60억명의 사람이 살고 있다.
60억개의 우주와 60억개의 철학과 60억개의 심장이 있다.
그 중 나쁜것과 좋은것을 구분짓는 것 만큼 무의미한 일이 또 있을까.
가장 중요한 건, 현재, 내 자신에게 있어 얼마나 더 충실한가.
얼마나 더 성취하였고,
얼마나 더 많이 사랑하는가가 아닐까?
자신을 평가할 시간도 부족할진데,
이제 남에 대한 평가는 살포시 내려 놓아보자.  
 
   
 
 
 
 
 
 of NEUTRINO
 
 ps.그 동안 여러 사람들을 공적으로 혹은 사적인 일들 때문에 만나 인터뷰 하며 느낀 건 대화에서 일부분의 성격들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허풍과 위선이, 어떤 이들은 쉼 없이 자기말만 해댄다. 굳이 비교하자면 할머님은 맞장구를 잘 쳐 주시는 편이었다.
할머니께서는 내 스케치북을 보고는 그림이 재밌다며 흥미로워 하셨다. 그리고 모두 엽서 시리즈물로 만들면 어떠냐고 하신다. 그렇게 20여년 만들어 모아 엽서계의 전설이 되라신다. ^^;
난 '요즘에는 모두들 인터넷으로 이메일만 간편하게 보내려고 하지 엽서 사는 사람 별로 없어요' 라고 말씀드릴까 했지만, 그냥 쭉 듣기만 했다.?
"예, 할머니 20년 열심히 만들어 모아 할머님 한 세트 드릴게요!" 그걸 듣고 함지박만하게 웃던 모습은 오늘의 대화 중 가장 큰 할머니의 웃음이었다.나오면서 인사를 드리면서 갖고 있던 '에이스'크래커 한 봉지와 미국 대륙횡단을 하며 찍었던 사진 한 장을 골라 짧은 글을 뒷면에 적어 할머니께 드렸다.
할머니는 너무나 고마워하시며, 그냥 받을수만은 없다고 커피라도 한 잔 사야겠다며 카페 안에서 잠깐 동안 나의 거절을 붙들고 실랑이를 벌이셨다. 결국 다음에 지나는 길에 꼭 들러 커피 한 잔 얻어 먹겠다며 자리에 앉혀 드렸다.
 
"그럼 무엇이라도 좋으니 저에게 뭔가 하나 적어주시겠어요?"내 부탁에 할머니께서 적어 주신 한 마디. 전지전능하신 신께서 축복을 내려주시길!
문득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께서 생각나던 귀가길이었다.
할머니.
제가 20년은 아니더래도 엽서 만들면 꼭 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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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that
yoyo
이 글을 보니...60억개의 우주에 각각 60억개의 외로움이라 생각이 드네요. 2011-06-10 05:12:07 
MKidHs
언론에서 보여졌던과는 다른면의 할머님의 모습을 만나뵙게 된거 같네요 .... 2011-06-10 23:53:27 
NEUTRINO™
yoyo/
그런가요.
결국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인가요..훌쩍.

MKidHs/
미디어를 항상 맹신할 필요는 없겠죠.
여튼 세상에는 다양한 생각들이 있다는 것.
자신부터 돌아보자구요~
2011-06-13 22:58:50 
홍요
저도 맥도날드에서 한 번 뵌적이 있는데.. 이상한 사람인 줄만 알았어요.. 겉모습만 보고 판단한 제 자신이 부끄럽네요.. 어찌보면 미디어에 비춰졌던 할머니의 모습은 우리들이 만들어낸 모습일지도~ 2012-01-31 00:5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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